도태

Mixed Media

single channel video

8'42"

김지훈

Kim Jihun

wildpasting@gmail.com

@mmuselmann

페미니즘을 사회악으로 보는 한 남성의 시선을 통해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을 드러낸다.

일부 청년 남성들에게 페미니스트들은 반사회적 혐오집단이다. ‘미러링’이라며 정당화하는 혐오 표현들은 이들을 더욱 정신 나간 집단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이유는 혐오 표현으로 인한 선입견뿐만은 아니다. 

영상 속 인물은 “남성이라서 힘든 점이 있고, 여성이라서 힘든 점이 있다. 따라서 남녀는 평등하다”고 생각하며, “시험 결과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는 것은 당연한데, 왜 노력은 하지 않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달라고 하느냐”고 한다. 그는 채용 성차별 등의 여성들이 받는 차별을 감각하지 못한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그의 협소한 경험 안에서는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빼앗는 악한 도둑으로 보인다. 그가 당연한 듯 말하는 ‘시험 점수에 따른 결과’는 (그는 알지 못하지만)현실의 차별을 은폐 또는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화자가 자신이 “혐오가 싫다”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혐오)은 감각하지 못하며, 자신이 남성으로서 싸잡아 비난당할때 와닿는 ‘혐오 표현’만 보인다. 그는 남녀가 대화로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차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대화는 공허할 뿐이다. 

화자는 군부대의 부조리를 문제삼지 않고 자신이 받을 보상을 믿으며 자연스럽게 순응한다.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는 것의 연장에서,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사회의 문제로 확장하는 여성들에게 “사회 탓 하지 마라”,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에게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며, 노력해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소수자들의 인정투쟁을 무화시키는 이러한 말들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문제는 사회가 아니라 너에게 있다.”라는 말은 “문제는 나에게 있다.”로 치환된다. 그리고 영상 후반부에 나오는 ‘시험 합격 명상’ 같은 영적인 수단에 의지하며 계속 불안에 떨면서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영상 타이틀 ‘도태’는 청년 남성과 여성들이 서로 하는 말이다. 사회악으로 보이는 상대방에게 도태되라며 저주한다. 무엇이 도태로 향하는 길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타자를 혐오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마저 파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청년 남녀는 서로를 ‘가해자’, 또는 ‘적’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영상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일부’ 남성들이 ‘정신병자’라고 보게 만드는 폭력적인 사회 구조를 드러낸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알아야 분노가 타인을 향한 혐오로 변하지 않고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업 노트

혐오가 너무 싫어서 남녀 간 갈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혐오 표현들이 함께 바꿔야 할 사회 문제를 가리고 있으니 연대하자’는 메세지를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에 기반한 남성들의 무의식적인 차별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연대를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방향이 나의 위치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었다. 여기서 느낀 점을 반영해 작업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왜 남성들은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혹은 부정하는가. 

청년 남성들의 ‘좁은 경험’ 안에서 남녀는 평등하다.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기 때문에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은 없다. 그저 시험의 협소한 공정에만 집착하며 경쟁할 뿐이다. 디폴트 값이 평등이니 여성할당제 같은 정책은 ‘불의’한 것이 된다. 자라오면서 세상 탓 하지 말라고, 변명 하지 말고 노력하라고 항상 들어왔다. 사회는 완전무결하며 모든 잘못은 노력하지 않은 ‘너 자신’의 것이 된다. 그래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확장하는 페미니즘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범죄자 ‘개인’의 문제를 아무 잘못도 없는 ’개인’인 나에게 ‘잠재적 가해자’라며 덮어씌우는 행위들은 분노를 더욱 키운다. 

결국 남성들이 차별을 부정하는 원인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에 기반해 정당화되는 불평등에 있다. 그만 싸우려면 무엇이 혐오의 원인인지 제대로 찾아낼 필요가 있다. 혐오가 싫다면 ‘싸우지 말자’가 아니라 ‘바꿔 나가자’가 되어야 한다.